옴잡이
"스무 살을 넘기고도 살아 보고 싶어요. 은영은 사실 그 전부터 혜민의 그런 마음을 알아채고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기왕 옴잡이로 만들었으면 저런 불편은 좀 없애 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은영은 시스템의 뚫린 부분에 대해 생각했다. 섬세하지가 못해, 쯧쯔. 배려가 없어, 쯧쯔쯔."
"내가 너를 싫어하는 것은 네가 계속 나쁜 선택을 하기 때문이지 네가 속한 그 어떤 집단 때문도 아니야. 이 경멸은 아주 개별적인 경멸이야. 바깥으로 번지지 않고 콕 집어 너를 타깃으로 하는 그런 넌더리이야. 수백만 해외 동포는 다정하게 생각하지만 너는 딱 싫어. 그 어떤 오해도 다른 맥락도 끼어들 필요 없이 누군가를 해치는 너의 행동 때문에 네가 싫어."
"선한 규칙도, 다른 것보다 위에 두는 가치도 없이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 특유의 탁함을 은영은 견디기 어려웠다."
"일을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거절도 할 줄 아셔야 해요. 과도한 업무도 번거로운 마음도 거절할 줄 모르면 제가 아무리 털어 봤자 또 쌓일 거에요. 노, 하고 단호하게 속으로라도 해 보세요."
"이제부터 하면 되지 하고 응원받았지만 마음이 조급해졌다. 살아간다는 거 마음이 조급해지는 거구나. 욕심이 나는 거구나."
"대흥은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갈지 스스로도 짐작할 수 없는 온건함의 계보 끄트머리에 서 있었다. 대흥의 마지막 여자 친구는 헤어지기 직전, 그런 대흥을 두고 '더치커피처럼 더디고 차갑고 카페인이 없다'고 폭언을 퍼부었는데 더치커피를 좋아하는 대흥이어서 더 상처가 컸다."
"그리고 대흥은 조금 덜 온건해졌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니었고 몇년에 걸쳐 천천히, 대흥은 변했다."
안은영 (콜링?)
"가족들과 친구들이 세계의 단단한 부분을 밟고 살아간다면 자신은 발이 빠지는 가장자리를 걸어야 함을 슬슬 깨달아 가던 중이었다."
"폭력적인 죽음의 흔적들은 너무나 오래 남았다. 어린 은영은 살아간다는 것이 결국 지독하게 폭력적인 세계와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가끔은 피할 수 없이 다치는 일잉란 걸 천천히 깨닫고 있었다."
"만화 동아리 애들이 보글보글 몰려들었고 어느새 강선과 은영은 그 무리에 낄 수 있게 되었다. 강선은 그림을 잘 그려서, 은영은 심령 소녀라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학교에서 두 사람을 가장 개의치않아 하는 무리였다. 하긴 그렇게 폭 넓고 놀라운 이야기들에 푹 젖어 사는 아이들이었으니, 쉽게 편견에 사로잡힐 리 없었다."
"패션은 원래 어느 선을 지나면 더 이상 일반적인 아름다움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니까요."
"은영은 다른 종류의 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가, 어느새부터인가는 보상을 바라는 마음도 버렸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멀고 희미한 가능성을 헤아리는 일을 좋아했다."
"눈 깔아."
거기서는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꺼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구해 주러, 잘 버텼다고 칭찬해 주러 오지 않는다. 그날 저녁 은영은 혜민과 패스트푸드를 먹기로 했다."
"은영은 내심 열심히, 열심히 사람들은 지키고 돕다 보면 흰 수염을 기르거나 옥비녀를 꽂은 누군가가 어느 날 찾아와 "고생했어, 이제 여생을 좀 즐기며 살아." 하고 칭찬하며 해방시켜 주길 바라 왔던 것이다. 백혜민의 입에서 그런 존재는 없다는 말이 나오자 알고 있었으면서도 약간 기운 빠졌다."
"저는 난데 없으니까요."
"볼 건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새로운 게 나타난다. 은영은 직업적 겸허함을 느꼈다."
"칙칙해지지 마, 무슨 일이 생겨도."
"그때 날 그 아래서 끌어냈던 동료들이 오래 찬 바닥에 앉아서 보상금을 받아 줬어. 누나들은 그냥 포기하고 장례 치르려고 했는데 고마웠지."
"서로의 흉터에 입을 맞추고 사는 삶은 삶의 다른 나쁜 조건들을 잊게 해 주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져도 괜찮아요. 그게 이번이라도 괜찮아요. 도망칩시다.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칩시다. 나중에 다시 어떻게든 하면 될 거에요."
"학생들에게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교사들에게 문제가 생길 때도 있지만 동시에 이런다면 그건 그 사람들 바깥에 원인이 있는 것이었다. 바깥에서, 나쁜 것이 이 모든 일을 일으키고 있다고 인표는 판단했다."
"폭력이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일맥상통하는 것이구나 싶기도 했다. 어쨌든 애초에 처음 한두 번을 용인해 주지 말았어야, 유야무야 넘어가지 말았어야 했을 문제였다."
"인표는 교양이 풍부했으므로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늘 있었던 동성애가 '교정' 대상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레스보스 섬만 말하는 게 아니다. 동아시아 고전문학에도 복숭아를 깨무는 소년에 대한 사랑은 자주 등장한다. 자연이라는 건 그런 게 아닌가. 늘 있었던 거스 앞으로도 있을 것."
"부모에게 이야기하는 건 나중에, 아이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나이가 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고 인표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같은 교직원이라도 미묘하게 벽이 존재해서, 회식을 할 때도 아주머니들은 함께하지 않았다. 급식실은 학교의 일부면서 학교와 분리되어 있었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넷플릭스로 먼저 보고, 책을 읽었다.
정세랑 작가님의 매력에 푹 빠졌다.. 햄보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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